마지막 작별인사
꿈만 같았던 3년의 시작
2023년 3월, 대학교에 입학함과 바로 동시에 첫 수학 수업에서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강의실에 늦게 도착해 몇 없던 빈자리에 앉았고, 옆자리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유학생 친구가 있었습니다.
"Where are you from?"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인연은 꿈만 같은 3년의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몇 주 만에 카카오톡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노래 취향도, 좋아하는 것들도 많이 비슷해 꽤나 잘 맞는 친구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친구로 지낸지 3개월이 되었던 2023년 5월 23일, 우리는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있었던 일들
지구 반대편에서의 상견례
지구 반대편에서의 상견례
2024년 중후반, 여자친구가 고향에 가족을 보러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녀는 2022년에 유학을 왔으니, 거진 3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먼저 가자고 했는지, 내가 가고싶다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젠가 같이 그녀의 고향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남미로 가는 비행기 항로중에는 미국 경유편이 가장 저렴했기에, 우리는 미국을 경유하는 계획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인은 ESTA라는 약식 비자로 비교적 간단하게 미국 입국이 가능하지만, 그녀에게는 미국에서 환승만 해도 비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서류들을 준비하고, 긴 시간을 들여 비자 인터뷰 준비를 하여, 10만원 가까이 하는 금액을 내며 인터뷰 예약을 잡았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내어 서울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에 갔고, 그녀는 이른 아침 추운 날씨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나긴 줄을 기다려 대사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인터뷰어는 준비해온 서류를 모두 제쳐두고 수많은 질문 세례를 이어갔습니다.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문장들을 말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에 아는 사람이 있냐" 라는 질문에 "남자친구가 한-미 이중 국적이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인터뷰어는 그 말을 듣자 마자 Rejected(거부) 글씨가 적힌 스탬프를 손에 들고 인터뷰 레터에 무자비하게 내려 찍었습니다. 결국 미국 환승 비자 인터뷰에서 비자 발급이 거부되었고, 미국 경유편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붉어진 눈시울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나왔고, 저는 아무말 없이 토닥여주었습니다.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던 우리는 미국을 경유하지 않는 항로를 열심히 찾아 보았고, 미국 항로보다 두배 가까이 비싼 유럽 항로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300만원 상당의 거금을 들여 유럽 경유 욍복 항공편을 구매했고, 저는 180만원 정도에 미국 경유편을 구매하여 따로 이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 과정은, 쉽지도 않았고, 값싸지도 않았습니다.
202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는 그녀의 고향으로 떠났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못봤던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저는 여행겸, 상견례겸 동행하여 지구 반대편까지 13시간의 환승 대기 시간을 포함한 대륙을 넘나드는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세부 여행기
2024년 8월 17일 ~ 22일 동안 그녀와 함께 필리핀 세부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9월 개강 전 학업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계획한 여행이었습니다.
짧게 느껴진 길었던 작별인사
첫 번째 작별인사
첫 번째 작별인사
2026년 1월 26일, 중학교 친구들과 베트남 여행 중이었을 때였습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아무 생각 없이 전화 받기를 눌렀습니다. "Soomin, I want to explore more", 그녀의 첫 마디였습니다. 이후에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녀가 이별을 결심했다는 것은.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나가야 했던 저는, "일단은 알겠고,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 하자"며 전화를 서둘러 끊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현실을 부정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번 통화를 했지만, 전화 통화로는 서로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번 만나는게 좋을 것 같아",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베트남으로부터 귀국하는 31일 당일날 아침에, 그녀와 마지막 만남을 약속했습니다.
두 번째 작별인사
두 번째 작별인사
2026년 1월 31일, 베트남에서 새벽 비행기로 돌아오자 마자 그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지만 굳이 누르지 않고 벨을 울렸습니다. 그녀가 문을 열었고, 저는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집 안에 들어섰습니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애써 올라오는 슬픔을 참으며, "아침은 먹었니?", "베트남에서 쌀국수 컵라면 사왔는데 같이 먹자" 라고 말하며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습니다.
물이 끓는 동안 우리는 좁은 침대에 나란히 함께 앉았습니다. 어색함은 아니었지만 이상한 느낌의 공기였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마음을 풀어놓았습니다.
그녀의 입장은 이러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힘들게 해". 그녀는 4년동안 집, 가족, 고향 친구 모든 것들을 버리고 나와 유학 생활을 했지만,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싶은지, 어디에서 일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내 주변의 생활 공간, 친구들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없어지고 새로 생기고 있어,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 곳이 나에게는 집같이 느껴지지 않아". 가슴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녀의 자취방이 마치 집같은 느낌이었으니 말입니다.
"완전히 연락을 끊자는 것이 아니야, 너는 아직 나의 베스트 프렌드고, 나는 너와 친구로 남으면 좋겠어" 그녀가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가치관의 차이, 서운했던 점들까지 터져나왔습니다. 마치 대역 죄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대화를 하기 힘들었습니다. 슬픔이 눈앞을 가리고, 숨통을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무너져 내려 울면서도 힘겹게 한 단어씩 말하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내가 변할게", 필사적으로 잡으려 했습니다. 그 당시 할 수 있던 모든 말, 할 수 있던 모든 행동을 하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우리 시간을 조금 갖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이 이별이 관계의 완전한 끝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미래에 우리가 다시 함께 하게 될 확률이 얼마정도일지 상상해봐". 그녀가 답했습니다, "33%에서 50% 정도?" 정말 멍청한 기대였지만, 저는 그녀가 50% 이상을 말하기를 원했습니다. 50% 보다 컸다면 이런 상황까지 올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답을 듣고 나니,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것다는 생각에 다시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조금이라는게 얼마의 시간인데?" 라고 되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도 얼마나 걸릴지 알 리가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을 말없이 함께 누워 있다가, 마지막 인사를 건냈습니다.
"함께 했던 3년이 너무 꿈만 같았고, 나와 함께 해주어서 너무 고마워. 인생에 있어서 앞으로 걸어가며, 곧 너의 인생을 좌우하는 큰 선택을 하게 될테지, 넌 어느 길을 가던지 잘 해낼 수 있을거야. 하지만 너무 힘들거나, 돌아갈 곳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다시 뒤로 걸어와도 괜찮아. 거기엔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고마워, 네 마음 잘 알겠어"
5분 가까이 떨리는 손으로 집으로 향하는 택시를 잡았고, 현관 문을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서로를 꼭 안았습니다. 그러자 멈출 줄 모르는 눈물은 또다시 터져나왔고, 우리는 서로 흐느껴 울었습니다.
저는 힘빠지는 사지를 이끌고 현관문 밖으로 나왔고, 그녀는 닫히는 현관 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는 애써 웃으며 말했습니다.
"I love you"
문을 닫고 들어가는 그녀를 뒤로하고, 복도를 걸어나왔습니다. 그냥 그곳에 주저 앉고 싶었습니다. 계단을 내려올 힘조차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택시에서 Wafaring starnger 이라는 곡을 들으며 흐느꼈습니다. 밝은 곡을 들으며 기분을 전환 할까도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그냥 눈물을 흘리며 슬프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 작별인사
세 번째 작별인사
2026년 2월 1일, 그녀에게 집중이 안된다는 핑계로 같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자며 불러냈습니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고, 같이 그녀 집 앞에 카페에 서로 마주보며 앉았습니다.
저는 기분을 전환하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싶은지, 어떤 것들을 찾아보고 있는지. "제발 나에게 돌아와줘" 라는 말이 곧장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 만 같았지만, 꾹꾹 눌러담으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습니다.
그녀는 장학금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바이오 AI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노트북에 켜진 인터넷 창을 의미 없이 바라보며 집중하는 척을 했고, 그 와중에 그녀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거나 가끔 블루베리 스무디를 한 입 들이킬 뿐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누구도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딱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욕심으로 불러낸 그녀에게 상처만 더 깊게 주고 있다는 것을. 그 생각이 들자마자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불러내서 미안해, 그냥 돌아가서 차 안에서 조금만 이야기 하다가 들어가자"
유난히 바람이 불고 추운 날이었습니다. 그녀와 저는 덜덜 떨면서 걸어갔고, "으 춥다" 라는 말들을 내뱉으며 주차된 차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잠깐이지만, 마치 그녀와 함께하는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가 갖자는 시간을 나는 존중해, 하지만 나는 네가 이 관계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좋겠어".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밀어낸 그녀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제가 말했습니다. "나도 이해해" 사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더욱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에, 저는 이해한 척 했습니다.
그녀는 가서 빨래를 널어야 한다는 말을 하며 잘가라며 인사를 건냈습니다. 공동 현관 문 앞으로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이, 그녀를 봤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혼자있는 시간
세 번째 작별인사를 끝마치고 집에 돌아오고 나서, 미칠듯이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으려 인스타 릴스를 보았습니다. 인스타를 내려보다 보니 '유학생의 힘든 현실' 이야기와 관련된 릴스들을 보았고. 유학생이 타지에서 생활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간접적으로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옛날 부터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I'm surviving(나는 살아남고 있어)"
그 때는 이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마 제가 유학을 가기 전에는 죽기 전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20세가 되기도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족, 친구들, 집, 안정적인 생활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비자, 경제, 사회적인 문제를 어린 시절에 모두 책임져야 했습니다.
한 릴스에서 타지에 정착을 희망하는 유학생들은 대게 다음과 같은 과정들을 거친다고 설명 합니다.
1. 타지에 대한 궁금증 기대감으로 가득 참
2. 타지에 적응하며 기대했던 것들이 점점 일상이 됨
3. 향수병 / 자신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가짐
4.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게 다가와 불안감이 커짐
5. 고향을 떠나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꿈
모든 사람이 똑같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그녀에게서 보였습니다. 지금 그녀는 3에서 4 사이 어디쯤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이는 고향에 돌아가서도 그곳이 집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26년도 여름 방학에 두 달 동안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단지 그녀가 그곳이 집이라고 느끼고, 편안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마음에 더욱 와닿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제게 너무나도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함께한 대부분의 시간동안 좋은 기억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속으로 그러한 슬픔을 혼자 삭히고, 때로는 저에게 풀어놓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기에 저는 너무 미성숙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녀와 떨어지자 그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를 더 잘 이해할 수록 미안한 마음 또한 커져갔습니다.
저는 이제 이해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아직 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할 것입니다. 그녀는 먼저 용기내어 성숙한 결정을 내린 것이고, '우리'를 위하여 이별이라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아직 그녀를 놓아주지 못했습니다. "친구로 지내자"라는 말이 꼭 "언젠간 꼭 다시 함께 하자" 라는 메세지로 들려왔습니다.
다시 인스타를 켜 릴스를 봅니다. 이번에는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는 법', '전 애인와 재회하는 방법'과 같은 제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포장된 말들을 하나씩 풀어보니 모두 똑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녀를 되찾으려면, 거리를 두는 것을 인정하고 그녀를 잊고 너의 인생을 살아라. 그녀가 미래에 너의 변한 모습을 보고 호감을 느낀다면, 다시 찾아 올 것이고, 아니라면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그녀를 잊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라"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아니 그러면 되찾는 법이 아니잖아요". 한 반나절쯤 비슷한 내용의 릴스만 계속 보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녀를 되찾는 방법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관계는 둘중 한명이 붙잡는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붙잡을 수록 더욱 멀어질 이유가 더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때로는 놓아줄 줄 알아야합니다. 놓아준 사람이 다시 돌아온다면 그것대로 행운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무덤덤하게 살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녀는 이별을 통해 저를 성숙하게 만들었고, 다시 찾아올 인연 앞에 더 준비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를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작별인사
2026년 2월 3일 아침, 가장 친했던 인생 친구이자, 여자친구였던 그녀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잘 지내고 있니?
대답하지 않아도 돼
나는 잘 못 지내고 있어
그냥 괜찮은 척 하고 있었나봐
우리는 친구로 남을 수 없을 것 같아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는
내가 나 자신에게 우리가 미래에 언젠가는 함께 하게 되겠지 라는 거짓된 희망을 준 것 같아
그래서 이 말이 더 하기 힘든 것 같아
왜냐하면 난 아직 널 사랑하거든
네 말이 맞았던 것 같아
많은 것들이...'
마지막으로, 사랑해, 그리고 안녕 :)
제가 메세지를 적는동안 카톡의 숫자 1은 사라져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메세지에 하트 모양 표시만 남겼을 뿐입니다.
머리가 새햐얘지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마치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처럼. 그녀가 저에게 헤어지자고 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친구로 지내고싶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친구로 지낼 수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낸 '마지막'은 영원한 안녕이 아닙니다. 언젠가 그녀에게 다른 남자친구가 생겨도 질투가 나지 않을 때쯤, 그때까지는 마지막 안녕이 될 것입니다.
함께 했던 987일은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철 없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고, 내가 얼마나 철없던 아이인지 깨달았으며, 이별의 슬픔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작별인사는 때로 가벼울 수 있고,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무거운 작별인사를 해야하는 이별은 너무나도 아프지만, 그렇다는 것은 당신이 인생에 몇 안되는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작별인사가 이토록 무겁게 느껴질 만큼의 사람을 한때 내 곁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이제는 미래에 언젠가 다시 그녀와 함께 하게될 그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이 꿈을 마음 한켠에 행복했던 기억으로 접어두려 합니다.
하지만 미래에 만약 그녀와 다시 함께하게 된다면, 나는 더욱 성숙한 남자가 되어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