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장한다
성장하고 싶은 욕구
내 전 여자친구는 내가 미숙해서 나를 떠나갔다. 그녀가 말하길, 그녀의 문제 또한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내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녀의 불신 또한 분명히 있었다.
헤어지고 나니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먹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았다. 스마트폰의 그 어떤 것도 나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아침 8시에 눈을 떴지만 침대에서는 오후 6시에 처음으로 일어났다.
일어나서 의자에 앉아보니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나 정말 처참히 무너졌네". 내 인생에 있어 이런 최저점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편재호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인생이 영화라고 생각해봐, 주인공이 엄청나게 평탄한 인생을 살면 누가 그 영화를 보겠니" 그나마 위로가 조금 되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서 릴스만 들여다 보다가 정신이 한번 더 깨어났다. "내가 봐도 이런 모습의 나랑은 정말 인생을 함께 하고싶지 않겠는데?"라며 생각했다.
이별 회고록을 쓰면서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자기 성찰을 깊게 했다고 느꼈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 있는 내가 생각해보니 나는 배우고 성찰한 것들을 글로만 써내려 갔을 뿐이고, 실천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실천을 하지 않으면 성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생각이 들자 마자 후리스를 입고, 신발을 들고 현관문을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가 찬 겨울 공기를 한숨 들이키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진짜로 실천하기
1키로를 뛰었고, 덤벨로 암컬과 레터럴 레이즈 운동을 했다. 힘들고 많은 양의 운동은 아니었지만, 내 기분을 환기하는데에는 충분했다. 그녀에 대한 감정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나에게 진짜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때때로 내게 정치, 여성 인권 관련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서로의 가치관은 많이 달랐다. 그녀가 바라보는 가치와, 내가 바라보는 가치중에는 겹치는 부분도,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다. 그때 마다 나는 항상 "내가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엇갈리는 부분이 있는게 아닐까?" 라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찾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궁금하다. 그녀가 진정으로 외치던 페미니즘의 진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 트라우마
나는 넷째고, 집에 둘째 누나가 있는데 그 누나는 나에게 어린 시절 어느 순간 부터 공포의 대상이었다. 항상 나에게 트집을 잡고, 화를 냈다. 하지만 내가 크기 시작하면서 부터 점차 서로 말을 안하게 되었다.
그러자 누나의 화풀이 대상은 나로부터 어머니로 바뀌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막 하며, 날선 목소리로 사소한 일에도 크게 화를 냈다. 나는 그런 일을 보고 들었지만, 대부분 방관하였다.
어느 날, 둘째 누나가 어머니에게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고, 나는 한마디 크게 소리쳤다. "도대체 왜그러는 건데?" 누나는 아무말도 없었다. 비록 누나의 행동을 고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날 방관자로부터 벗어났다.
내가 죽도록 싫었던 것
나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어릴 때 부터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남이 나를 싫어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서 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어릴 적 부터 나 자신을 잃어 갔던 것 같다. 항상 남들을 모방하고, 남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어 주었다. 그런식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니, 성인이 된 지금도 그런 습관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나와 함께 몇개의 프로젝트를 하려고 준비중이던 일부 지인들에게 전했다. "제가 지금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많이 힘들어요. 프로젝트 참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싶지 않았다.
나는 줄을 서있다가도 누군가 내앞으로 새치기를 하면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하지 못했다. 그냥 한칸 뒤로 서지 뭐, 이런 느낌이 더 강했다. 이 또한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자기방어기재의 발동이었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못받았다고 했다. 체육관에서 그녀를 귀찮게 하는 남자가 있어 나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바로 그녀에게 뛰어 갔지만, 그녀 옆에 있는 그 남자에게 큰소리 치지 못했다.
나는 남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남에게 큰 소리 치지 못하는 자기방어기재 때문에 나의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건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잘못된 습관이며, 결국 이 습관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아픔을 주었다.
그래서 이번 이별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밀쳐지는 것.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직접 마주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공포를 아직 이겨낸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핸드폰 알람이 울릴 때 마다 그녀가 연락오진 않았을까 하며 파블로프의 개 처럼 핸드폰을 쳐다본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매일 이러한 나의 단점을 인식하며 살겠지. 그렇게 살다 보면 나는 바뀔 것이다.